오늘은 거함거포시대. 그 시작을 알린 HMS Dreadnought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위 사진은 본격적인 거함거포 시대의 시작을 알렸으며 이후의 전함의 형태의 판도를 가른 HMS Dreadnought 입니다.
Dreadnought는 단순한 함명을 벗어나 전함의 형태에 있어서 하나의 구분점이 되었습니다.
Dreadnought의 기존 함선과의 차이점 이라면 크게 두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1. 무장

HMS Dreadnought는 12인치 mark X 함포를 주포로 하여 함선 중앙선을 따라서 트윈터렛 세개와
좌측면과 우측면에 각각트윈터렛 하나씩을 구비하여 12인치포를 총 10문이 있고
부포로는 3인치포(흔히 12파운드포로 불린 물건)을 27문을 장비하였습니다.
그러면 Dreadnought 이전의 함급은 어떠한 무장을 취했냐하면
HMS Dreadnought와 동일한 해에 건조되고 취역했지만 Dreadnought 이전의 전함과 동일하게 분류되는 HMS Lord Nelson를 통해 보겠습니다.

위 그림이 HMS Lord Nelson의 개략적인 모습을 그려놓은 것입니다.
무장으로 HMS Dreadnought에 사용한 것과 동일한 형식의 12인치 mark X 함포를 트윈터렛으로 앞과 뒤에 각각 하나씩 4문이 있고
측면을 따라서 9.2인치 포를 좌우에 각각 앞뒤로 트윈터렛하나씩과 중앙에 싱글터렛하나를 구비하여 총 10문을
12파운드 포를 총 24문을 사용하였습니다.
Dreadnought 급과 Dreadnought 이전급의 차이는 바로 주요 무장에서 나게 되는 것입니다.
Dreadnought급 같은 경우 12인치 이상의 대구경 함포를 주포로 하여 동일한 구경의 대구경함포를 다수 배치한 형식이고
Dreadnought이전급의 경우 10~12인치 수준의 함포와 7~10인치 수준의 함포를 혼합하여 배치한 식입니다.
이런 무장의 혼용에서 일어나는 차이점은
Dreadnought 이전급 같은경우 대구경 함포로 장거리에서 사격을 하고
어느정도의 거리에 들어오면 대구경함포보다 더 정확하고 더 빠른 한단계 낮은 급의 함포를 이용하여
실질적인 공격을 펼치면서 상대함선을 가라 앉힌다 하는 생각으로 제작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로 주포의 개념은 없고 모든 포가 주포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쓰지마 해전을 통해서 기존의 전술인 5~3천피트 (1.5~1km)거리의 교전이 아닌
1만9천피트(5.7km)에서 사격을 개시하여 1만3천피트(4km) 수준에서 명중탄을 기록하면서
해전을 집적 겪은 일본과 러시아 뿐만 아니라 지켜보던 세계의 여러 열강에서는
이래 저래 포를 혼합해서 복잡하게 운용하는 것 보다 장거리에서 적에게 강한 타격을 입히는게 좋겠구나 생각을 하게 됬고
첫 건조는 일본에서 이루어 지지만 막상 내놓아 보니 혼합형으로 나오게 됬고 미국에서도 건조를 시작하였지만 가장먼져 완성시켜놓은것은
영국해군의 HMS Dreadnought이며 이를통해서 거함거포주의가 열리게 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대구경 포의 필요성은 어뢰의 사정거리 증가에 의해서 일어난 것인데 후에는 주포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습니다)
2. 추진기관
Dreadnought 급 직전의 함선은 주된 추진기관으로 Triple-expansion steam engine (굳이 해석하자면 삼단팽창식 증기엔진정도?)을
사용하였고 석탄을 주 연료로 사용한 기관이었으며 열효율면이라던지 출력이 그렇게 좋지 못했기 때문에
보통 함선의 최대속도가 19knot(34km/h)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대략 요런 행정기관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Dreadnought 급 부터는 기존의 실린더 행정기관을 벗어난 형태의
증기터빈엔진을 사용하게 됩니다.

(터빈엔진의 개념도 입니다)
증기터빈 자체는 이미 그리스시대 때부터 사용되왔던 개념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저 유희용 장난감 수준에 불과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던중 1543년이 되어서
Blasco de Garay 라는 스페인 해군장교에 의해서 함정에 처음 장착되어 운용됬지만 지속적으로 운용되기에는
그 당시 기술로는 내구성이라던가 정밀한 가공이 이루어 지지 못하여 다시 암흑기를 맞이 하였다가
1894년 영국에서 최초의 실용적인 증기터빈엔진을 갖춘 배(함명은 Turbinia) 가 취항하게 되고 34.5knot(64km/h) 라는 경의적인 속도를 보이면서
해군의 관심을 끌게 되며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 하였고 이전보다 더 효율적이고 대형화된 증기터빈엔진이 HMS Dreadnought에 적용되어
Dreadnought는 기존의 전함이 가진 벽과 같은 속도인 20knot를 뛰어넘는 21knot(39km/h)라는 매우 빠른(?!) 속도를 가진 함선이 나타나게 됩니다.
(참고로 Dreadnought 급도 주된 연료로는 아직 석탄을 사용하였고 석유는 석탄이 타는 시간을 늘려주기 위한 보조적인 용으로만 사용됬습니다)
별 것 아닌것 같지만. All-Big-Gun('전거포' 라고 하더군요)와 실린더형 엔진을 벗어난 실험적 성격의 증기터빈엔진을 통한 21knot의 경이적인
속도는 기존의 함선의 틀을 깨트리는 '혁신' 이었고 이 함선을 건조하는데 영국은 국가 세금의 1%나 되는 대단한 비용을 소모했을 정도로
Dreadnought급 함선은 매우 고가의 함선임에도 불구하고 경쟁국들은 Dreadnought급 전함을 건조해 나가게 되었고
이를 통해 건함경쟁이 일어나며 본격적인 거함거포의 시대의 문이 열리게 됬습니다.
이렇게 새 시대를 연 HMS Dreadnought는 1906년 2월 취역 1906년 12월 영국해군에 인도되어서
1907년 부터 1911년 까지 Home Fleet(본국함대)의 기함을 맡기도 하고
1912년 1함대의 기함으로 활동하며 지중해를 중심으로 움직이다가
1914년 대전 발발과 함께 4함대의 기함을 맡아서 북해에서 활동하다가
1916년에는 대대적인 개수를 하고 독일 순양전대의 해안포격방어를 위한 3전대의 기함을 맡아서 본토의 템즈강 세네즈 기지에서 대기를 하여서
같은해 발발한 유틀란트 해전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 말인 1918년 3월 다시 Grand Fleet으로 복귀한 후 본연의 임무인 4함대의 기함 임무를 맡았지만
하지만 임무도 여기까지... 북해의 혹독한 날씨와 기함으로써의 많은 움직임으로 함체는 금방 손상되었고 1918년 7월
다른 구형전함들과 함께 1919년 2월까지 예비역으로 남아있다가
1920년 매각이 진행되어 1921년 T.W. Ward & Company에 매각되고
1923년 스코틀랜드의 Inverkeithing이라는 작은 항구마을에서 스크랩처리 됩니다
(위 사진의 동네가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inverkeithing 마을의 사진입니다 인구 5천의 작은 마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적의 전함을 부수기 위해 만들어진 전함의 새지평을 열게된 최초와 혁신의 타이틀이 붙은 HMS Dreadnought의 유일한 전공은
1차대전중 1915년 3월 18일 독일의 800톤급 U보트 U-29을 충각을 통해 가라앉힌 것 뿐입니다....;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세계 최초의 근대적 항공모함의 시초가 된 HMS Argus가 영국해군에 인도된 것과 같은해인 1918년
HMS Dreadnought는 해군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고 이듬해 매각이 결정되었습니다...

세계최초의 근대적 항공모함의 취역과
세계최초의 근대적 전함의 퇴역....
어쩌면 저때부터 이미 거함 거포시대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던 것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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